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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2호선, 이름 속에 숨은 이야기들

by lolohong 2025. 7. 21.

‘강남’이라는 지명은 이제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서울의 대표 상징 중 하나입니다. 오늘은 서울 지하철 2호선, 이름 속의 숨은 이야기들에 대해 소개할 예정입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이름 속에 숨은 이야기들
서울 지하철 2호선, 이름 속에 숨은 이야기들

 

 

'강남'은 언제부터 강남이었을까? – 이름의 역사와 지역의 성장

하지만 이 이름이 도시의 얼굴로 쓰이기 시작한 건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한강 이남 지역은 한양 중심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게 개발된 지역이었습니다. 지금의 강남구 일대는 대부분 농경지나 논밭이었고, 일제강점기에도 중심지는 강북에 집중돼 있었습니다.

 

‘강남’이라는 이름이 공식적으로 행정단위에 등장한 건 1970년대 들어서면서 입니다. 서울시가 도시 팽창에 따라 강남 개발을 추진하며 ‘강남구’라는 이름이 생기고, 이 지역에 교통 인프라가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도시화가 시작됐습니다. 강남역은 1982년 개통된 2호선 구간의 일부로, 처음부터 지금의 ‘강남’이라는 명칭을 달고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당시 강남역이 위치한 곳이 '역삼동'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했던 시절이라는 것입니다.

 

즉, ‘강남’이라는 지명은 지역 정체성보다 행정·개발 중심의 기획 의도에 가까웠고, 이후에 ‘강남8학군’이나 ‘강남스타일’처럼 상징적 가치를 얻게 됐습니다. 역 이름이 지역을 대표하고 브랜드화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처음엔 단순한 방향을 나타내던 이름이, 어느덧 서울의 경제·문화 상징으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역삼’, ‘선릉’, ‘삼성’… 2호선 동쪽 구간에 숨겨진 과거


강남역을 지나면 이어지는 2호선 동쪽 구간은 ‘역삼’, ‘선릉’, ‘삼성’, ‘종합운동장’ 등으로 이어집니다. 언뜻 보기에는 현대적인 이미지가 강한 이 지역들도, 역명에 숨어있는 과거를 들여다보면 또 다른 결이 보입니다.

‘역삼’은 ‘역(驛)’과 ‘삼(三)’이라는 한자 조합에서 알 수 있듯이, 예전에 세 개의 역마(말을 갈아타는 곳)가 있던 동네라는 데서 유래했습니다. 이는 조선시대 교통체계와도 연결되며, 서울과 수도권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였다는 뜻입니다. 지금은 고층 건물이 즐비한 비즈니스 중심지지만, 이름 자체는 교통과 물류의 중간지점을 상징했습니다.

 

‘선릉’은 조선 제9대 왕 성종과 그의 왕비 공혜왕후의 무덤인 ‘선릉’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실제로 선릉과 정릉은 현재 문화재청이 관리하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합니다. 도심 속 빌딩 숲 사이에 고요하게 자리한 이 능은, 역명 하나로도 조선 왕실의 흔적을 보여줍니다. 단순히 지하철역이 아닌, 도시 안의 역사적 시간축이자 숨결이 되는 것입니다.

 

‘삼성역’은 사실 그 이름이 대기업 삼성에서 온 게 아닙니다. 삼성동이라는 지역 이름이 먼저였고, 이는 한자로 '세 번 성(三成)'을 뜻합니다. 여기서 ‘삼성’은 세 개의 마을이 합쳐진 곳이라는 설도 있고, 조선시대 ‘삼성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다만 지금은 삼성전자, 코엑스, 무역센터와 같은 대기업 이미지가 이 역명에 덧씌워져, 의미가 재해석된 대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뚝섬', '한양대', '왕십리', '을지로입구', 그리고 '시청'까지 – 한강과 왕도의 연결선


2호선이 성수대교를 지나 북쪽으로 진입하면 ‘뚝섬’ 역을 지나게 됩니다. ‘뚝섬’은 한강의 중요한 지리적 포인트였습니다. 조선시대 뚝섬은 군사 훈련장, 활쏘기 연습장, 나루터, 심지어 수상 훈련까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던 공간이었습니다. 지금은 한강공원이 조성되어 있지만, ‘뚝’이라는 말 자체가 ‘둑’에서 파생된 것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즉, 수위를 조절하거나 제방 역할을 하던 지역이라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한양대’ 역은 현재의 한양대학교 캠퍼스를 중심으로 형성된 이름이지만, 그 일대는 예전부터 ‘성동구’의 중심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공장지대였고, 해방 이후엔 도시재개발과 함께 교육기관이 자리잡으며 현재의 ‘대학 기반 도시’ 이미지로 전환됐습니다. 이 역시 역명 하나에 교육, 산업, 도시재생이 모두 담긴 셈입니다.

 

‘왕십리’는 정말 독특한 이름이다. 조선시대 수도 한양에서 10리 떨어진 지점이라는 데서 ‘왕십리(王十里)’가 되었으며, 실제로 왕이 잠시 쉬어가던 장소였다고 전해집니다. 지금은 환승 거점이자 상권 중심지지만, 예전에는 서울의 외곽이자 ‘접경지대’ 같은 곳이었습니다. 왕십리의 ‘십리’는 단순한 거리 단위가 아니라, 도심과 변두리를 가르는 상징적 경계선이기도 했습니다.

 

‘을지로입구’와 ‘시청’은 말 그대로 서울의 행정과 금융의 중심입니다. ‘을지로’는 한국전쟁 이후 재건된 상업지구의 상징이고, ‘을지문덕 장군’의 이름에서 따온 도로명이기도 합니다. ‘시청’은 서울시의 행정 중추로서, 과거 경성부청을 거쳐 지금의 서울특별시청으로 이어져온 역사를 안고 있습니다.

 

2호선의 이 구간은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한강이라는 자연과 왕도라는 권력 중심, 그리고 시민의 삶이 교차하는 도시의 층위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역명은 이를 읽어내는 하나의 언어이자, 도시가 기억을 저장하는 방법입니다.

 

서울 지하철 2호선은 단순한 순환선이 아닙니다. 이동하는 도시의 역사서이며, 역명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지역의 정체성과 시대적 변화를 읽을 수 있는 단서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 순환선의 다른 구간들도 하나씩 들여다보며, 이름으로 도시를 이해하는 새로운 여정을 계속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