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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R와 굽기의 낭만

by lolohong 2025. 7. 14.

2000년대 초반, “CD 한 장 굽자”는 단순한 파일 복사 요청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기획’이고 ‘설계’였으며, 때론 누군가에게 건네는 작지만 진심 어린 선물이었습니다. 특히 중·고등학생들이나 20대 초반의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CD 굽기’라는 행위가 하나의 문화이자 놀이였습니다. 단순히 MP3를 USB에 옮기는 것과는 전혀 다른 감정과 정성이 오갔습니다. 오늘은 CD-R와 굽기의 낭만에 대해 소개할 예정입니다.

CD-R와 굽기의 낭만
CD-R와 굽기의 낭만

 

CD 한 장에 담긴 감성의 설계 – ‘굽기’는 단순한 복사가 아니었다

CD-R의 용량은 700MB. 지금 기준으로는 ‘사진 몇 장’ 수준에 불과한 이 용량이 당시에는 꽤나 넉넉한 공간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음악, 영화, 게임 등 멀티미디어 콘텐츠가 본격적으로 디지털화되기 시작한 2000년대 초, 이 700MB라는 공간은 의외로 빠르게 차버리곤 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의 CD에 어떤 콘텐츠를 담을 것인지, 어떤 순서로 배치할 것인지, 제목은 어떻게 붙일 것인지 등 작은 것 하나까지도 고민하게 되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가장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형태는 음악 모음집이었습니다. MP3 파일을 35MB 기준으로 계산하면, 대략 150곡 가까이 넣을 수 있었지만, ‘진짜 CD 앨범’처럼 굽고자 할 땐 오디오CD 형식으로 변환하여 7080분 분량의 음악만 담을 수 있었습니다. 이 경우 트랙 순서와 분위기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첫 곡은 인트로, 중간은 전개, 마지막은 아웃트로. 마치 앨범 프로듀서처럼 곡을 구성하는 사람도 있었고, 특정 테마(예: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노래, 고백하기 전 듣는 OST 모음 등)를 기준으로 만든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친구 생일을 맞아 만든 ‘생일 CD’에는 해당 친구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곡과, 친구들 간의 추억이 담긴 사진, 심지어 자필 메시지 파일을 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직접 만든 커버 이미지와 인쇄용 레이블을 출력하여 붙이면, 비공식이지만 세상에 단 하나뿐인 앨범이 되는 셈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이걸 DIY 음반 제작이라고도 불렀습니다.

 

‘굽는다’는 행위가 이렇게 감성적이고 창작적인 작업으로 확장되었던 데는 기술적 제약이 있었습니다. CD-R은 한 번만 쓸 수 있는 매체였기 때문에, 실수하거나 망치면 버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덕분에 하나의 CD를 굽기 전에는 용량 계산을 꼼꼼히 하고, 굽기 소프트웨어를 통해 에러 없이 구워지는지 확인하는 등 사전 작업이 철저했습니다. 또, CD에 굽고 나서 바로 확인하는 루틴도 있었습니다. 가끔 굽는 도중 오류가 나거나 특정 곡이 재생되지 않는 일이 있었기 때문에, 검수까지 포함해서 하나의 ‘프로젝트’였던 것입니다.

 

이 시절의 CD는 단순한 저장 장치를 넘어, 나만의 감성, 나의 기억, 그리고 관계에 대한 애정이 담긴 디지털 예술품이었습니다. 지금은 USB, 클라우드, 스트리밍 링크 하나로 모든 게 해결되지만, 그때의 ‘굽기’는 정성이었고, 감각이었고, 표현의 도구였습니다.

 

CD-R 문화와 그 경계 – 창작과 불법 사이의 회색지대


CD-R이 대중화되던 2000년대 초는 동시에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저작권 인식이 미흡하던 시기였습니다. 인터넷 속도가 ADSL에서 VDSL로 넘어가며, 데이터 다운로드가 급격히 쉬워졌고, 당시 유행했던 P2P 프로그램—예를 들면 소리바다, 프루나, 셰어박스, 당나귀—를 통해 음악, 영화, 드라마, 심지어 게임까지 다운로드할 수 있었습니다. 이 시절, CD-R은 완벽한 디지털 컨테이너였습니다. 누구나 데이터를 쉽게 담고 배포할 수 있었으며, 그 덕분에 콘텐츠 소비 문화는 대중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불법 복제도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PC방에서는 최신 게임 CD를 구워달라는 손님이 줄을 섰고, 학교 앞 문방구에서는 최신 가요 CD를 은밀하게 판매하곤 했습니다. 또, ‘XXX 최신 히트곡 모음집 Vol.3’와 같은 제목으로 수백 곡의 MP3가 담긴 CD가 비공식 유통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저작권 개념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당시 디지털 복제는 너무도 쉽게 가능했고, 법적 처벌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화처럼 여겨지던 시기였습니다.

 

반면, 이 회색지대의 CD-R 문화는 동시에 창작과 공유의 영역도 존재했습니다. 특히 커버 디자인에 대한 애정이 컸습니다. 포토샵으로 만든 표지, 각 트랙에 대한 감상문, 가사집까지 수록한 CD가 등장하며, 이는 마치 인디 음반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누군가는 ‘팬메이드 OST’를 만들어 친구에게 선물했고, 또 누군가는 여행 사진을 슬라이드 쇼로 만들어 CD로 구워 가족에게 공유하기도 했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이후 블로그, 유튜브, SNS로 이어지는 UGC 문화의 초기 형태였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누구나 콘텐츠를 편집하고 공유하며, 그 속에 자신의 감성과 의견을 담는 과정이 CD-R을 통해 시도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면에선 지금의 틱톡 영상 편집이나 유튜브 썸네일 작업과도 통합니다.

 

또한 당시에는 CD 커버 레이블 출력 서비스를 제공하는 문방구도 있었는데, 이를 통해 자신만의 앨범처럼 완성도 높은 CD를 제작하는 것도 가능했습니다. 디스크 상단에 프린트하는 방법부터, 투명 케이스에 삽입할 수 있는 인쇄물까지 제작하며, 오히려 상업 음반보다 더 개성 있는 패키지가 많기도 했습니다.

 

물론 CD-R이 불법의 수단이 되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디지털 콘텐츠를 처음 다루기 시작한 세대의 미숙한 창작 욕구와, 아직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았던 과도기적 혼란이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는 도둑이기도 했고, 아티스트이기도 했습니다.

 

광학 드라이브의 퇴장과 CD-R의 기억이 남긴 것들


CD-R의 전성기는 생각보다 짧았습니다. 2004년 이후부터는 USB 메모리의 보급이 시작됐고, MP3 플레이어의 보급과 더불어 휴대용 저장 방식도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00년대 후반부터는 클라우드 기술의 등장과 함께 물리 저장매체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CD-R은 빠르게 구시대의 도구가 되어갔습니다.

 

결정타는 광학 드라이브의 퇴장이었습니다. 한때는 데스크탑에 반드시 달려있던 CD롬 드라이브가, 점차 노트북에서 빠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대부분의 신형 노트북과 PC는 디스크드라이브가 없는 상태로 출시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제는 CD를 읽을 장비조차 없어진 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D-R은 기억의 매체로 남았습니다. 실제로 중고나라나 헬로마켓, 번개장터 등지에서는 지금도 CD-R 백업본을 다시 돌려보고 싶어 USB 외장 CD롬을 구입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특히 학창 시절 친구들과의 사진, 자작곡, 팬픽션, 프로젝트 파일 등이 담긴 CD를 되살리려는 시도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가끔은 “이 CD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몰라요”라며 복원 요청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디지털 스트리밍 시대의 우리는 버튼 하나로 모든 콘텐츠를 소유하고 경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손의 감각과 정성은 사라졌습니다. 그 옛날 CD-R을 굽기 위해 폴더를 정리하고, 용량을 계산하고, 오류를 점검하며 신중하게 진행했던 일련의 과정들은 단순한 기술을 넘어, 사람의 시간을 담는 ‘의식’에 가까웠습니다. 지금의 세대에겐 생소할지 몰라도, CD-R이 남긴 문화적 유산은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더불어 레트로 열풍이 다시 불면서, 일부 굿즈 제작자들이 CD-R 형태의 메모리카드를 만들거나, 모형 CD 굿즈로 추억을 자극하는 방식도 늘고 있습니다. 팬아트 작가들은 과거의 CD 커버 스타일을 차용해 디지털 아트워크를 제작하고, 빈티지 감성의 인테리어 소품으로 CD를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CD-R은 단순한 기록 도구가 아닌, 정성과 애정의 기록 매체였습니다. ‘한 번만 구울 수 있다는 제한’, ‘무언가를 물리적으로 전해준다는 정성’, ‘단 한 명을 위한 콘텐츠’라는 감각은, 지금의 대량 소비 사회에서는 쉽게 찾기 어려운 가치였습니다. 그렇기에 CD-R은 사라졌지만, 그 손맛과 감성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기억 속, 서랍 안 깊숙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