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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토로라 스타택-폴더폰의 전설

by lolohong 2025. 7. 16.

1996년, 대한민국의 거리에 한 가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의 허리춤이나 가방에서 ‘딸깍’ 소리를 내며 열리는 작은 기계가 모습을 드러냈고, 그것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휴대전화였습니다. 이 기계의 이름은 모토로라 스타택. 단순한 통신 도구가 아닌, ‘신분과 감성’의 상징으로 불리기 시작한 그 폴더폰은 곧 전 국민적인 유행 아이템으로 떠오릅니다. 오늘은 모토로라 스타택-폴더폰의 전설에 대해 소개할 예정입니다.

모토로라 스타택-폴더폰의 전설
모토로라 스타택-폴더폰의 전설

 

작고 가볍고 멋졌다 – ‘스타택’이란 이름이 불러온 혁신

스타택은 전 세계 최초의 폴더형 휴대전화입니다. 이전까지의 핸드폰은 대부분 직사각형의 바 타입이었으며, 크기도 무겁고 투박했습니다. 하지만 스타택은 ‘작고, 가볍고, 접힌다’는 혁신을 통해 시장을 뒤흔들었습니다. 특히 ‘덮개를 여는 동작’ 자체가 마치 영화 속 스파이처럼 세련되고 시크해 보이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디자인 혁신이 아니라, 사용자의 행동까지 바꾼 제품 철학이었고, 통화의 시작과 끝이 곧 ‘액션’이 되는 상징성을 부여했습니다.

 

실제 스타택의 무게는 약 88g에 불과했고, 접었을 때의 두께도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수준이었습니다. 아날로그 방식의 CDMA와 GSM 모델이 존재했고, 이후에는 디지털 방식으로도 확장되며 다양한 지역에서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스타택은 당시 고급 제품군으로 포지셔닝되었고, 국내에서는 100만 원이 넘는 가격으로 판매되며 일종의 ‘프리미엄 기기’로 자리 잡았습니다.

 

재밌는 점은, 모토로라 스타택은 단지 폰의 기능이 좋아서 팔린 게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당시 기준으로도 배터리 용량은 작았고, 디스플레이는 단색이었습니다. 문자 메시지도 느리고, 전화 외의 기능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제품이 폭발적인 인기를 끈 이유는 ‘디자인’과 ‘기능을 넘어선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스타택은 기술 이상의 감성을 팔았고, 사람들은 그 감성에 열광했습니다.

 

연예인들이 스타택을 사용하는 모습은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고, 드라마, 영화 속에서는 고급스러움을 상징하는 소품으로 활용되었습니다. 누군가 스타택을 꺼내 전화를 받을 때, 그 모습만으로도 “와, 저 사람 멋지다”라는 인상을 줄 수 있었고, 이는 당대의 브랜드 마케팅이 얼마나 정교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또한, 스타택은 처음으로 ‘개인화’된 디자인 개념을 담았습니다. 배터리 커버를 교체할 수 있었고, 컬러 버전도 출시되었으며, 일부 사용자들은 별도로 고급 가죽 케이스를 제작해 휴대하는 등, 단순한 전자제품을 넘어 패션 아이템으로 소비되었습니다.

이렇듯 스타택은 단지 전화를 걸고 받는 수단이 아닌, 하나의 ‘시대적 감각’을 대변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 작은 폰을 ‘전설’로 기억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폴더폰의 시대, 그 감성을 열다


스타택의 등장은 곧바로 ‘폴더폰 시대’를 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그 이후 삼성, LG, 팬택 등 국내 휴대폰 제조사들은 앞다투어 폴더형 모델을 쏟아냈고, 몇 년 안에 바형 핸드폰은 시장에서 급속도로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한국 사회는 이 작은 접이식 기계를 중심으로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변화시켜 나갔습니다.

 

2000년대 초반, 학교 앞 문방구나 대리점에는 형형색색의 폴더폰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벨소리 다운’, ‘컬러 LCD’, ‘카메라 탑재’라는 문구는 학생들의 관심을 끌었고, 폴더를 여는 그 짧은 순간은 사용자에게 일종의 ‘무대’였습니다. 특히 고등학생과 대학생 사이에서 ‘휴대폰을 여는 자세’는 그 사람의 성격이나 스타일을 드러내는 하나의 상징처럼 여겨졌습니다.

 

폴더폰은 기본적으로 닫혔을 때에는 화면과 키패드를 보호하고, 펼쳤을 때에는 자연스러운 통화 자세를 제공한다는 실용적인 장점도 있었습니다. 그 구조 덕분에 화면과 마이크가 각각 얼굴과 입 근처에 자연스럽게 위치하여 음질과 사용성 모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와 동시에 폴더폰은 ‘디자인 경쟁’을 촉발시켰습니다. 스타택 이후 등장한 수많은 폴더폰들은 각자의 개성을 강조했습니다. LG 싸이언은 ‘초콜릿폰’이라는 감각적인 제품을 내놓았고, 삼성 애니콜은 ‘지펠폰’, ‘블루애로우’ 등 감성적인 이름과 디자인으로 사용자들을 공략했습니다. 당시는 단순히 성능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예쁘고 독특한가가 더 중요한 구매 포인트였던 시절이었습니다.

 

스타택을 필두로 한 폴더폰 시대는 문자 메시지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자판 하나하나를 눌러가며 ‘ㅋㅋ’, ‘ㅇㅇ’, ‘ㅎㅎ’를 타이핑하던 기억은 지금의 키보드와는 전혀 다른 감각을 제공했습니다. 감정을 담기 위해 이모티콘을 그림처럼 표현하던 시절, 길이 제한 때문에 ‘한 글자 줄이기’에 목숨 걸던 대화들, 통화보다는 문자가 더 편했던 우리의 청춘이 있었습니다.

폴더폰은 또한 ‘기다림’의 문화였습니다. 누군가로부터의 전화나 문자를 받기 위해 폰을 열고 닫는 행동 자체가 일상 속 설렘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감성의 출발점에 스타택이 있었습니다.

 

스마트폰 시대, 폴더폰이 남긴 것들


스타택이 처음 등장한 1996년부터, 스마트폰이 본격 대중화된 2010년 전후까지 약 15년은 폴더폰의 전성기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도 폴더폰을 쓰지 않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터치스크린 스마트폰을 들고 다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택을 포함한 폴더폰이 남긴 ‘기억의 잔향’은 여전히 강력합니다.

 

첫째로, 폴더폰은 ‘물성’을 강조했던 시절의 상징이었습니다. 폰을 손에 쥐고, 버튼을 눌러 통화하며, 닫는 순간까지 모든 동작이 손맛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감각은 지금의 스마트폰과는 전혀 다릅니다. 스마트폰은 그저 ‘화면’을 터치할 뿐이고, 물리적인 상호작용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젊은 세대는 오히려 ‘폴더폰 감성’에 끌리고, 일부는 중고 시장에서 스타택이나 예전 폴더폰을 찾아 구매해보기도 합니다.

 

둘째로, 폴더폰은 ‘기다림의 미학’을 품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카카오톡, 인스타그램 DM, 아이메시지 등 즉시 반응이 가능한 플랫폼이 주를 이루지만, 폴더폰 시절에는 ‘답장을 기다리는’ 시간이 존재했습니다. 그 기다림 자체가 관계의 깊이를 만들었고, 문자의 한 글자, 말투 하나에도 더 신중해지는 문법이 있었습니다. 스타택 시절의 통화는 단순한 대화가 아니라, 상대방과의 연결을 위한 진심이 오갔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셋째로, 스타택은 ‘브랜드의 힘’을 각인시킨 제품이었습니다. 오늘날의 스마트폰은 기능이 너무 유사하고, 디자인도 획일화되어 있지만, 당시 스타택은 브랜드 자체로 ‘차별화’를 가능하게 했고, 이 감각은 많은 기업들이 지금까지도 참고하는 롤모델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삼성전자가 2020년대 들어 폴더형 스마트폰(갤럭시 Z 플립 시리즈)을 출시하면서, “스타택의 향수를 계승하겠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도 이 연장선입니다.

 

마지막으로, 폴더폰은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이 감성을 담을 수 있던 마지막 시절의 흔적입니다. 정보의 전달이 목적이었던 기술이, 감정의 매개로 발전했던 특별한 순간. 그것이 바로 폴더폰, 그리고 스타택이 남긴 유산입니다.